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문단 편집) == 인품 == 스키피오는 대단히 신사적이고 자비로운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며칠 후, 병사들이 포로로 잡혀있던 처녀 한 명을 그에게 데려왔다. 보기 드문 미모를 지닌 그 처녀는 가는 곳 어디에서도 모든 이들의 눈을 사로잡아 끌었다. 그녀의 고향과 가문에 대해 알아내는 중에 스키피오는 다른 사실들 사이에서 그녀가 알루키우스라는 젊은 갈리아 귀족과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즉시 그녀의 부모와 그가 알기로 그녀를 죽을 만큼 사랑하는 그녀의 약혼자를 불렀다. 약혼자가 도착하자 스키피오는 흔히 아버지들이 쓰는 말투보다도 더욱 사려깊게 말했다. > >“저도 젊습니다. 그런 제가 그대에게 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모든 겸양은 제쳐두고 편히 이야기합시다. 그대의 약혼녀께서 병사들에게 끌려왔을 때 저는 그대가 그녀를 무척 사랑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녀의 미모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제가 제 나이에 어울릴 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허락되는 지위에 있었다면, 나랏일에 몰두하는 대신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순수하고 정당한 사랑에 빠지는 일 말입니다. 지금 저에겐 다른 사람의 사랑, 바로 그대의 사랑을 빼앗을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약혼녀는 제 보호 하에 들어온 이래로 부모에게서 받을 만한 보살핌을 받아 왔습니다.''' 그녀는 우리 둘 모두에게 가치를 지닌 더럽혀지지 않은 선물로 그대에게 선사되기 위해 남겨져 있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저는 그대에게 '''[[동맹|로마의 친구]]가 되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곳 민족들이 제 아버지와 숙부님이 고결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것을 경험했던 것처럼, 그대도 저를 그같은 사람이라 믿어주신다면, 로마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상 어디에도 그대의 부족에게 우리 로마만 한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 >그 청년은 부끄럽고도 기쁨에 겨웠다. 그는 스키피오의 손을 잡았다. 스키피오가 보여준 친절함에 상응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차는 보답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그는 스키피오에게 보답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사 하고 모든 신들에게 기도했다. > >잠시 후에 그 처녀의 부모와 친척들이 불려왔다. 그들은 그녀의 몸값으로 막대한 양의 금을 가져왔는데, 그녀가 몸값 지불도 없이 자유롭게 풀려나자 스키피오에게 황금을 선물로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들은 그가 선물을 받아주는 일이 그 처녀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반환된 것에 대한 크나 큰 감사의 의미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들이 선물을 받으라고 집요하게 재촉하자 스키피오는 선물을 받겠노라고 말하고 그것을 자신의 발 아래에 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알루키우스를 부른 후 '''“그대는 미래의 장인어른으로부터 받게 될 결혼 [[지참금]] 외에도 저의 결혼 선물로 이 황금도 받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알루키우스는 그 금을 받아서 소중히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 >그는 스키피오에게서 받은 선물과 명예로운 대접에 대단히 기뻐하며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고향 사람들의 귀를 스키피오가 받아 마땅한 찬양으로 채웠다. 그는 단언했다. 그 젊은이는 그가 거느리고 있는 부대의 힘만큼이나 유별난 관대함과 동정심으로 인하여 그가 가는 길 어디에서든 승리하면서 마치 신처럼 그들 곁으로 올 수 있었다고. > >그는 그를 따르는 자들 중에서 병사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수일 후에 1,400명의 정예 [[기병대]]를 이끌고 스키피오에게 돌아왔다. > ---- >리비우스의 <로마사> 26권 50장 훗날 [[마키아벨리]]는 그의 역작 <로마사 논고> 3권에서 이 일화를 인용하며, 한니발은 '두려움을 얻는 장군'이었고 스키피오는 '사랑을 받는 장군'이었으며 두 명장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승리와 명예를 획득했다고 평했다. >로마인들은 무기로 이탈리아에서 피로스를 몰아낼 수 없었지만, 파브리키우스는 관용으로 그렇게 했다. 파브리키우스는 피로스의 노예 중 한 사람이 그(피로스)를 독살하겠다는 제안을 해온 것을 거부하고 그 사실을 피로스에게 알려 주었던 것이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도 신(新) 카르타고를 파괴할 때 한 젊고 아름다운 처녀를 진상 받았으나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고 그 약혼자에게 돌려보내는 고결함을 보임으로써 스페인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이 행동이 입소문을 타자 그는 스페인 전역에서 우방을 얻었다.'''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자질을 정말로 바란다는 것을 이 사실로 잘 알 수 있다. 또한 군주의 삶을 서술하고 군주가 어떻게 처신해야만 하는지를 규정하는 역사가나 저술가들이 그런 자질을 얼마나 칭송하는지도 분명하다. 그런 이들 중에서도 크세노폰은 키루스가 친절하고 인도적이었음은 물론 자만, 잔혹함, 탐욕, 그 외에 인생을 더럽히는 악덕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가 이런 모습을 통해 얼마나 많은 명예, 승리, 업적을 성취했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한니발은 위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고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것은 다음 장에서 논의할 것이다. >(중략) >'''스키피오가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그곳은 즉시 그의 우방이 되었고 그곳의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칭송하게 되었는데 이는 전부 그의 인정과 자비가 이끌어낸 결과였다.''' >'''반면에 한니발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그와는 정반대의 방법을 활용했다. 그는 잔혹함, 폭력, 약탈, 그 외의 온갖 기만술을 사용했지만 스키피오가 스페인에서 성취한 것과 같은 결과를 성취했다.''' 이는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가 한니발의 편을 들어 반란을 일으키고 모든 사람이 그를 따랐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략) >사람은 두 가지 주된 자극에 이끌리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과 두려움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사랑이나 두려움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을 쉽게 휘어잡을 수 있다. >(중략) >사랑을 받으려는 열망이 너무도 강력한 사람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면 비열한 사람이되고, 두려움을 안기려는 열망이 너무도 거대한 사람은 중도를 넘어서게 되면 불쾌한 사람이 된다. 정확히 중용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람의 본성이 그런 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니발과 스키피오처럼 월등한 능력으로써 지나친 사랑 혹은 지나친 두려움에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삶의 방식으로 칭송받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했다. >두 지휘관의 영광은 이미 언급했다. 스키피오는 스페인에 있던 그의 군대가 동맹의 일부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켜 피해를 보았다. 이 일이 발생한 원인은 그가 두려움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야망으로 통하는 문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그 즉시 인정 많은 지도자를 향한 사랑은 깡그리 잊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병사들과 동맹이 그런 모습을 보였기에, 스키피오는 그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그동안 피해 왔던 잔혹한 조치를 일부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은 그의 잔혹함과 기만으로 인해 손해를 본 특정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나폴리와 많은 다른 도시들이 로마 인들에게 충실한 채로 남은 것은 그의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한니발의 무자비한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그 어떤 적보다 그를 혐오했다. 피로스가 이탈리아에 군대를 이끌고 침입했을 때 로마인들은 피로스를 독살해 주겠다는 인물을 오히려 피로스에게 알려 주었지만, 한니발만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군대를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도 로마인들은 끝까지 추적하여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따라서 한니발은 무자비하고, 신뢰할 수 없고, 잔혹했다는 이유로 이런 불이익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모든 역사가가 칭찬했던 막대한 이득을 얻기도 했다. 한니발의 군대는 다양한 부류의 병사들로 구성되었지만, 서로 간에 알력이 일어나거나 한니발 본인에게 거역하는 일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한니발이 안겨준 두려움이 그 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 자체도 너무나 큰데, 한니발의 출중한 능력이 가져온 명성까지 더해지니 병사들은 압도되어 단결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두 위대한 지휘관 중 한 사람은 선한 행동으로, 한 사람은 악한 행동으로 같은 결과를 달성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3권 中 참고로 말하자면, 카르타고 노바의 함락은 BC 209년이다. 즉 '''한국 나이로 고작 28살의 청년이 저런 고결함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포에니 전쟁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아직 기원전도 지나지 않은 먼 고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스키피오의 인격적인 부분을 알 수 있다. 고대의 전쟁에서 전투 후 약탈과 살육은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로마군]]은 이 약탈에서 극도로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존 키건]]의 저서에 따르면 로마군이 점령한 도시에서 약탈을 벌이면 마주치는 남자는 죄다 노예로 만들거나 아니면 팔다리를 잘라 잔인하게 죽이고 심지어 마주치는 모든 동물들조차 사지를 토막내고, 대개 약탈은 지휘관이 정해준 기간이 지나거나 아니면 시내에 살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안 남을 때까지 진행했다고 하니 그 악명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잔혹한 일에 대해서 다르게 대처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 바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할 때 부하 병사들에게 그런 약탈을 아주 철저하게 엄금시켰다. 이미 도시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성벽을 오르는 자에게 황금 월계관을 씌워주겠다는 등 갖은 보상을 약속할 때에도 약탈만은 철저하게 금지시켰고, 자신은 이 도시에 잡힌 모든 이베리아 부족 인질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